본문 바로가기

정보이야기

반도체 산업스파이 사건, 휴민트 기술로 분석하다

‘리크루트, 핸들링, 위장조직’… 산업스파이 사건을 통해 본 스파이 기술의 실제 적용

최근 일련의 삼성전자 수조 원대 반도체 기술 유출 사건은 단순한 범죄를 넘어, 고전적인 스파이 기법이 산업 현장에 어떻게 침투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이 글에서는 해당 사건을 '휴민트적 시각'에서 접근해 리크루팅, 핸들링, 위장 조직 등 스파이 기술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1. 사건 개요: 산업스파이의 이면

첫 번째 사건: 반도체 전설이 설계한 복제 공장

1984년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커리어를 시작한 최모 씨는 하이닉스 CTO와 한화큐셀 사장 등을 역임하며 업계의 '전설'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2018년, 그는 싱가포르에 설립한 진세미를 통해 중국 시안에 삼성 반도체 공장을 모방한 복제 공장 프로젝트를 본격화했습니다. 최씨는 삼성에서 확보한 공장 설계도와 공정도, 클린룸 환경 설계 기준(BED) 등을 중국 측에 넘기고, 대만의 폭스콘과 중국 지방정부로부터 수천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복제 공장은 단순한 기술 복제가 아닌, 실질적 생산을 위한 완비된 인프라를 목표로 했고, 실제로 200여 명에 달하는 반도체 고급 인력을 한국에서 유출해 기술 집적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이들 인력은 대부분 전직 반도체 엔지니어로서, 자발적으로 계약을 맺고 현지 기술 이전에 참여했습니다. 다만 폭스콘의 투자 철회로 인해 공장은 최종 완공되지 못하고 좌초되었으며, 기술 유출 혐의로 최씨는 기소되었습니다.

두 번째 사건: 청두의 프론트 조직, 그리고 D램 기술 유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삼성전자 출신 A씨는 국내에 헤드헌터 회사를 설립하고, 청두 소재 반도체 회사 '청두가오전'의 고문으로 활동하며 기술 인력 유출을 주도했습니다. 그는 삼성의 20나노 D램 제조 기술을 보유한 엔지니어들을 포섭했고, 2~3배 이상의 연봉, 고문직 제안 등으로 30명 이상의 인력을 중국으로 유인했습니다.

특히 A씨가 운영한 헤드헌터 회사는 표면적으로는 정상적인 직업소개소였지만, 실제로는 기술 유출을 위한 위장조직이었고, 이를 통해 단 1년 3개월 만에 중국 청두 현지 공장에서 D램 웨이퍼 시범 생산에 성공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피해 규모는 4조 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며, 프론트 조직을 통한 산업스파이 기법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됩니다.

2. 인재 리크루팅 전략: 표적 선정과 포섭 기술

스파이 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 중 하나가 리크루트, 즉 타겟 인물의 식별과 포섭입니다. 이번 사건에서는 명확한 리크루트 전략이 작동했습니다. 표적은 퇴직 혹은 승진에 누락된 기술자들이었고, 이들에게는 새로운 커리어, 고액 연봉, 사회적 명예라는 3대 유인책이 제시되었습니다.

리크루트 요소 사례 적용
심리적 취약성 이용 퇴직자, 승진 누락자, 기업 내 갈등 경험자 대상
경제적 인센티브 2~3배 연봉, CTO·고문직 제안
이념/미션 포장 “중국 반도체 굴기를 돕자”는 명분 부여

이는 전형적인 리크루트 포맷이며, 그 결과 20명이 넘는 인재가 자발적 이직의 형태로 기술을 들고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3. 핸들링: 확보된 인물 관리와 임무 유지 기술

리크루트가 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다음 단계는 바로 핸들링(Handling)입니다. 확보된 인재가 임무를 이탈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정보를 생산하게 만드는 기술입니다. 이번 사건에서 핸들링은 계약 유지, 성과 기반 인센티브, 주변 환경 통제라는 3가지 형태로 진행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일부 기술자는 중국 현지 공장의 설계 고문으로 임명되어 본인이 참여한 설계에 자부심을 가지게끔 했으며, 성과급으로 수억 원대 계약을 체결해 계속 기술을 제공하도록 유도했습니다. 핸들링 기술은 스파이 세계에서는 흔히 ‘신뢰-의무-보상’ 순환으로 이해됩니다.

4. 위장조직 운영: 가장된 기업이 정보 수집의 통로가 되다

스파이 세계에서 흔히 사용되는 기법 중 하나는 프론트 조직(Front Organization)입니다. 표면적으로는 합법적 사업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보 수집이나 작전 실행을 위한 허브로 기능하는 구조입니다. 이번 사건에서 등장한 헤드헌팅 회사는 전형적인 프론트 조직이었습니다.

해당 조직은 국내에서 인재를 ‘정상적 이직’처럼 포장해 해외로 유도했습니다. 이직 후에도 이 회사는 계약 유지, 인력 교체, 제2·제3의 포섭을 계속 이어갔고, 산업스파이 활동이 장기적으로 지속되도록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외형은 기업이지만, 내실은 정보 수집기관 역할을 수행한 셈입니다.

5. 기술 유출의 구조화: 복제 공장이라는 전략적 허브

기술 유출이 단편적인 파일 탈취가 아닌 공장 전체를 복제하는 프로젝트로 확대됐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매우 이례적이었습니다. 시안에 설립 예정이던 이른바 ‘복제 공장’은 설계도, 공정도, 생산 기술까지 모두 한국에서 확보된 정보를 기반으로 구축되었으며, 자금은 대만계 자본과 중국 지방정부로부터 조달되었습니다.

이 구조는 단지 수동적인 정보 수집을 넘어, 획득된 정보를 재현 가능한 시스템으로 변환해 실체화하는 2차적 기술 전략을 보여줍니다. 이 과정에서 수천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었으며, 이는 전형적인 전략 HUMINT 기술의 확장 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반도체 산업스파이 사건은 단순한 기술 유출이 아니라, 리크루트-핸들링-프론트 운영이라는 스파이 기술이 고스란히 적용된 사례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 기술 보안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에서 시작된다.
- 위장된 합법 조직일수록 가장 위험하다.
- 산업보안은 법, 조직, 정보, 심리까지 아우르는 종합전략이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프론트 조직’이 어디선가 문을 열고 있을지 모릅니다. 기술 보호는 기술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결국, 사람과 문화가 그것을 지켜냅니다.

마무리하며

이번 반도체 산업스파이 사건은 단순한 기술 유출을 넘어, 조직적인 인재 포섭, 정교한 위장조직, 그리고 기술 실체화 시도까지 포함된 복합적 구조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해당 사건을 휴민트적 시각에서 분석하며, 고전적 스파이 기술인 리크루팅, 핸들링, 프론트 조직 운영이 어떻게 산업현장에 적용되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산업스파이란 단어가 막연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번 사례는 그 개념이 어떻게 현실에서 구체화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시였습니다. 기술이 아닌 사람, 계약이 아닌 통제, 회사가 아닌 위장이 존재했던 이 사건은 산업스파이 교본의 실제판이라 불릴 만합니다. 흥미롭고도 의미 있는 사례였습니다.